안녕하세요 꿈을 꾸는 자입니다. 영화 《이십일세기 소녀》를 보고 왔습니다.
장르 : 드라마
감독 : 야마토 유키, 이가시 아야, 에다 유카, 카토 아야카, 사카모토 유카리, 린 슈토 등
제목 : 이십일세기 소녀
출연진 : 하시모토 아이, 아사쿠라 아키, 이토 사이리, 카라타 에리카, 이시바시 시즈카, 키타우라 아유 등
개봉 : 2020.09
모든 내용은 저의 주관대로 작성하였음을 말씀드립니다.
1. 영화 《이십일세기 소녀》후기
영화가 개봉 후 며칠이 지나니 극장에서 상영을 안 하더군요. 그래서 볼 생각을 못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VOD로 나와서 보고 왔습니다. 영화 같은 느낌은 들지 않더군요. 마치 아주 짧은 단편 연극의 모음집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일반적인 영화처럼 자연스러운 이야기의 흐름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노골적으로 드러내거나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래서 줄거리는 제 주관적인 해석을 추가했습니다.
위 원인 때문인지 영화의 몰입력은 그다지 좋지 못했습니다. 자연스러운 흐름도 아니고, 이해가 원활하지도 않다 보니 인내심이 많지 않으시다면 끝까지 보시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요.
영화의 제목처럼 모든 단편 이야기들의 주인공은 단연 여자입니다. 소녀라기보다는 중년이 아닌 10~30대를 말하는 것 같더라고요. 영화감독이 생각하는, 보여주는 소녀들의 삶의 세계가 궁금하신 분들은 보시기 바랍니다.
2. 영화 《이십일세기 소녀》줄거리 (스포)
여러 명의 여성들이 원형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다. 빙빙 돌아가는 식탁처럼 그녀들도 돌아가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동안 참아왔던 하소연이라도 하려는 것일까. 각자가 경험했던 이야기를 거침없이 쏟아내기 시작한다.
주로 성적인 이야기를 하는데, 남자들의 행동을 비꼬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섹스 자체만을 원하는 남자들과 달리 사랑을 원하는 그녀들은 못마땅한 남자들의 행동이 너무 많다. 그녀들의 말은 틀린 구석이 썩 있어 보이지 않는다.
의문이 드는 것은 왜 그녀들은 그것을 이야기하지 못했을까? 계속 반복되는 남자들의 행동을 왜 참아왔을까? 그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버림받지 않기 위해서였을까. 그리고 계속 그런 행동을 보이는 남자의 행동은 단지 남자만의 문제일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보통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예민하고 섬세하기 마련이다. 남자들은 자신이 하는 행동이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킬지에 대해서 크게 개의치 않는다. 그래서 두 종족 사이의 불화가 끊이지 않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한 여자의 이름이 화면에 나오는데, 그녀의 이야기를 보여주려는 듯하다. 담배를 피우고 있는 그녀는 불을 달라는 남자에게 담배를 문 채로 얼굴을 내민다. 다소 노골적이고 자극적이다. 낯선 남자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이 없는 듯하다.
이어서 그녀는 낯선 남자와 하룻밤을 보낸다. 충분히 예상할만한 장면이었다. 그녀는 애초부터 이러한 상황을 예측했는지도 모른다. 옆에 남자는 없지만, 틈틈이 남자와 잠자리를 가지는 그녀다. 그게 그녀의 라이프스타일 같다.
그녀의 동료로 보이는 다른 여자는 남자와 함께 살고 있다. 귀가 후 남자에게 성적인 어필을 해보지만, 남자의 반응은 냉랭하다. 오래된 관계는 성적인 매력을 떨어뜨리는 것일까. 두 여자의 모습은 상반된다.
이번에도 여자의 이름이 화면에 나온다. 그녀는 대학생이다. 디자이너를 꿈꾸는 그녀는 하고 싶은 일이 참 많다. 남들처럼 취업하고 스펙을 쌓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자신과 잘 맞는 친구와 이미 브랜드를 만들 꿈에 부풀어 있다.
왜 그녀는 남들과 다른 길을 선택했을까.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그렇게 만들었을지 생각해보면, 일단 가치관이 다른 것이다. 물질 만능주의에 따라 모든 사람들의 목표는 유사하다. 그러나 물질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하루 중 9시부터 6시까지의 긴 시간 동안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면서 받은 돈을 가지고 여가시간과 주말을 풍족하게 누리는 것과 그 반대가 있다.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다만 주위를 둘러보면 전자의 수가 많을 뿐이다.
여자의 이름이 나온다. 그녀는 섹스 파트너를 가지고 있다. 그 남자는 여자 친구가 있지만, 자신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섹스를 하고 있지 않다. 왜 하지 않을까. 목적이 사라진 관계인데 어떻게 유지가 되는 것일까.
그들은 이미 육체만의 관계가 아닌 듯하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이 있듯이, 그 반대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서로 어색하던 사이에도 매일 관계를 맺으면서 마음을 나누면 또 감정이 생기기 마련이다.
여자의 이름이 나온다. 그녀는 우연히 어떤 여자를 만났다. 그렇게 인연이 되어 자주 만나다 보니, 정이 들고 어느새 서로 좋은 감정이 생겼다. 이상하다. 그러려고 한 게 아닌 듯한데 말이다.
이성애자인 보통의 사람이 동성과도 좋은 감정을 나눌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원래 동성애자였던 것인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사람은 동물하고 똑같이 생각할 수 없는 어려운 동물임에는 틀림없다. 복잡하고 미묘하다.
여자의 이름이 나온다. 그녀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의 정의를 남자와의 관계에서 찾는다. 아니, 그렇다고 믿는 듯하다. 그렇게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남자와의 결별이 그녀에게 큰 충격을 안겨준다.
그 남자의 사랑이 자신이 아닌 것이다. 그 남자와 다른 남자가 키스하는 모습의 사진이 있다. 하지만 사진을 떠나서 그 남자가 이성애자든 동성애자든 중요하지 않다. 그의 사랑이 내가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사람은 관계로부터 행복하기도 하고 불행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그녀는 가장 행복한 것이 남자와의 관계라고 표현한다. 사람과의 관계는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되지만, 한편으로는 전부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녀는 아니었다.
사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극 중에서도 그녀는 스스로를 가장 좋아하는데, 그런 그녀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기에 그가 너무 좋다고 말이다. 결국 자신을 좋아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이지, 상대방을 진심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내가 상대방이 좋은 것인지, 나를 좋아해서 좋은 것인지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누군가에게 좋아함을 받고 싶다는 것은 곧 인정의 욕구로써 자칫 우리를 병들게 하는 원인이 되기 십상이다.
3. 영화 《이십일세기 소녀》결말 (스포)
이 영화의 결말은 딱히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여러 명의 여자들이 단편으로 주인공으로 나와 이야기를 풀이 때문인데, 너무 많아 줄거리에도 몇 명의 소녀들의 이야기만 풀어냈다.
영화 제목은 소녀를 말하고 있으나, 우리가 생각하는 10대 감성의 소녀가 아니다. 중년이 아닌 10~30대의 여성을 소녀로 지칭하는 듯하다. 많은 여자들의 생각과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보여주었다. 엄청난 공감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았다.
4. 영화 《이십일세기 소녀》의 교훈
4.1 다양한 소녀들의 가치관
다수의 여성들이 이야기가 나오는 만큼 그녀들이 사는 삶의 세계가 모두 다르다. 그 삶은 그녀들의 가치관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소녀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가치관이 다르지만, 소녀에게로 한정 지었다.
여기서 말하는 가치관은 일반적인 것이 아니라 은밀하고, 내밀하고, 바깥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가치관을 말한다. 모두 다 하나씩은 가지고 있지 않은가. 아무튼, 다른 사람의 가치관을 알고 있으면 더욱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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